시론
정청조 인하대 교수
1951년부터 가야금에 입문한 황병기(黃秉冀)는 195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법학도였다.
그가 정남이 流 가야금 산조를 배울 당시 그때까지만 해도 구음(口音)으로 전수 되다시피 한 가야금 산조를 서양의 기보법으로 옮겨 국악교육의 기초를 마련한 가야금계의 선구자다.
서울대 음대 가야금 강사와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를 역임하면서 가야금의 명인으로 알려지면서 그는 작곡에의 눈을 뜨게 된 동기가 있다.
서울대 음대 정회갑 교수의 작품 ‘가야금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변주’(1963년 작곡), 이어 미국 작곡가 앨런 호바네스가 발표한(1985년) ‘가야금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16번’을 접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작곡 활동에 임했다.
앨런 호바네스는 가야금에 흠뻑 빠져들어 루 해리슨과 함께 1960년대를 풍미한 작곡가다.
황병기 명인은 최초의 창작 가야금 독주곡 ‘숲(1963년)’, ‘비단길’, ‘전설’, ‘미궁’, ‘밤의소리’ 등 주옥같은 가야금곡을 발표했다.
그가 새로운 가야금 기법의 개발을 위해 아시아의 다른 현악기 기법을 도입하면서 그의 창작세계는 범아시아적으로 확대된다.
물론 전통 가야금계의 원로들의 반감과 전통훼손의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 전통적인 가야금산조와는 달리 짧은 전개와 친숙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은 비, 달빛, 뻐꾸기 등 묘사적인 제목, 특징적인 분위기나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표제음악적 경향을 띄운다는 평을 받았다.
1974년에 발표된 가야금 독주곡 침향무는 불교 범패의 음계를 바탕으로 아시아의 정서, 특히 인도의 정신을 표현한 곡이다.
외래문화와 전통, 서역과 황토색, 감각과 관능미가 법열의 세계로 승화된 신라의 불교미술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품이다.
지금도 세계적인 음악축제에 연주되는 이 침향무(沈香舞)는 명곡이 되었는데, 빠르기와 장단이 자주 바뀌면서 마치 환상적인 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휘모리 장단의 3악장에서의 손톱으로 긁고 문질러대는 부분은 절정에 달한 춤의 경지를 잘 표출한 행태로 작곡기법의 백미를 보여준다.
가야금이라는 우리 전통악기에 전통을 뛰어 넘는 독자적인 영역을 확대하고 창출해낸 국악계의 거성이 오늘 타계했다.
글쓴이와는 오랜 인연으로 1962년 서울대 음대 재학시절, 당시 국어학 강사였던 소설가 한말숙과의 연애 시에 편지 심부름과, 후일 서울대 법대 선 후배로서의 인연으로 가끔 조우해 오다가 이 같은 부음 소식을 듣고 한 인물이 사라져 갔구나 하는 서러움에 그의 족적을 간단히 서술했다.
그의 족적은 실로 국악계의 혁명가로 기록될 것이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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